박진영
출생 : 1971년 12월 13일 (48세) 서울특별시 광진구
신체 : 182cm, AB형
직업 : 가수, JYP 엔터테인먼트 이사, 음악 프로듀서, 안무가, 댄서
가족 : 아버지 박명노, 어머니 윤임자, 누나
배우자 : 서윤정(1999년 결혼 / 2010년 이혼) 현 배우자(2013년 결혼)
자녀 : 장녀(2019년 1월 25일생) 차녀(2020년 3월 9일생)
학력 : 서울용마초등학교 (졸업) 건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중학교 (졸업) 배명고등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지질학 / 학사) 연세대학교 (정치학 / 석사 중퇴)
종교 : 무종교
소속사 : JYP엔터테인먼트
데뷔 : 1992년 그룹 '박진영과 신세대'
가수 겸 프로듀서 박진영이 ‘라디오스타’에 출연해 ‘미국병 대참사’(?)에 얽힌 스토리를 공개한다. 또 박진영과 선미는 ‘아메리카 룸메이트’였다고 밝히며 원더걸스가 미국에 진출했던 당시를 회상한다고 해 이들이 들려줄 이야기를 궁금하게 한다. 오늘(12일) 수요일 밤 10시 40분 방송 예정인 고품격 토크쇼 MBC ‘라디오스타’(기획 안수영 / 연출 최행호)는 박진영과 그의 애제자 선미, 그의 스승 김형석이 함께하는 ‘스승님이 누구니’ 특집으로 꾸며진다. 본업인 가수로 컴백하는 박진영은 신곡 ‘웬 위 디스코’를 통해 ‘애제자’인 원더걸스 출신 선미와 뭉쳤다. 신곡 발표를 앞두고 나란히 ‘라스’를 찾은 박진영과 선미는 신곡 작업기부터 사제 간 폭로전까지 가감 없이 펼치며 빅 재미를 선사할 예정이다.
박진영과 선미는 원더걸스의 미국 진출 당시를 떠올리며 ‘미국병 대참사’에 얽힌 스토리를 들려준다. 특히 박진영은 원더걸스가 최고의 인기를 누릴 때 한국 활동 대신 미국 진출을 감행한 이유에 대해 솔직하게 밝힌다고 해 궁금증을 고조시킨다. 반면 선미는 한 방송에서 미국 진출 당시를 회상하며 “2008년 먼 곳에 가지 마!”라고 속내를 밝혔던 이유와 박진영과 ‘아메리카 룸메이트’ 시절 잠들 때마다 경험해야 했던 웃픈 일상을 공개한다고 해 호기심을 유발한다. 더불어 전 세계 KPOP을 널리 알리고 있는 두 주역 박진영과 BTS 소속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수장 방시혁 대표가 야심 차게 미국 시장에 처음 도전장을 내밀었던 시절의 일화도 공개된다.
박진영은 방시혁과 마치 부부처럼 다투고 급기야 가출까지 했던 일화를 고백해 시선을 강탈할 예정이다. 국내 대표 엔터테인먼트 ‘JYP 엔터 수장’ 박진영의 이야기도 공개된다. 박진영은 라이벌(?) SM엔터테인먼트를 제치고 엔터사 실적 1위를 차지한 것과 관련해 “2등이 제일 좋다”라고 뜻밖의 소감을 밝혔다고 해 궁금증을 유발한다. 또 일본에서 역사를 쓰고 있는 니쥬 프로젝트에 대한 솔직한 속내부터 한국에서는 남친짤과 ‘밈(Meme)’(유행 요소를 응용해 만든 사진이나 동영상 챌린지)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반면 일본에서는 ‘JYP 어록’으로 조명을 받는 극과 극 반응에 대해 ‘셀프 진단’을 내린다고 해 그의 대답을 궁금하게 만든다. 박진영의 ‘미국병 대참사’ 에피소드는 오늘(12일) 수요일 밤 10시 40분에 방송되는 ‘라디오스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한민국의 가수이자 음악 프로듀서, 작곡가, 댄서, 기업인, 배우이다. JYP엔터테인먼트의 최대 주주로서 현재 JYP엔터테인먼트의 주식 17.72%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2019년 7월 주식시장에서 시가 기준으로 1천 3백억 원에 달한다. 박진영은 과거 JYP의 사장(대표이사)이었지만 현재는 아니다. 하지만 이수만, 양현석과는 달리 박진영은 JYP의 사내 등기이사로서 경영상 법적인 책임을 지는 위치에 있다. JYP 엔터테인먼트의 (총괄) 프로듀서로 아티스트 및 프로덕션, 영업 업무를 맡는다. 특히 회사 내 신인 아티스트 런칭 때는 최종 결정 권한을 맡는 것으로 보인다.
영어권에선 이니셜인 JYP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프로듀서로서는 J.Y.Park "The Asiansoul"이라는 이름을 쓴다. 1971년 아버지 박명노, 어머니 윤임자 사이에서 둘째로 태어났다. 어머니의 말에 따르면 어렸을 때부터 호기심이 많고 해보는 것은 다 해보는 '사고뭉치'였단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 직장이 해외 지사로 발령이 나면서 온 가족이 약 2년 정도 미국 생활을 하게 됐다. 그리고 이 때부터 춤에 재능을 보여서 흑인들과 댄스배틀을 해도 1등을 했다고 한다. 이 때 그의 미국 생활은 그로 하여금 흑인음악에 대한 매력을 직간접적으로 체득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그 후 박진영은 더욱 음악에 빠져들었고 부모님은 자식의 뜻을 존중해 현재의 "딴따라" 박진영이 탄생했다.
연세대학교 지질학과 90학번이며, 보통 알려진 1994년보다 2년 전인 1992년 박진영과 신세대로 대학 재학 중에 데뷔했지만 이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또한 이 시기부터 작곡가 김형석의 밑으로 들어가 2년간 온갖 수발을 들며 작곡의 A부터 Z까지 모두 배워오는 등 본격적인 창작의 밑거름을 다지기 시작한다. 연세대학교 이과대학 3반 과방에서 1991년-92년 지질학과 MT 앨범을 뒤져보면 박진영이 나온 사진도 한 개 있다. 가수로 데뷔한 뒤 경기대학교 행정대학원에 입학했다가 학업성적이 우수하고 성실하며, 학습의지가 높아 교수추천을 받고 연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에 편입했다. 편입 과정에서 지질학과 출신에다가 딴따라 연예인이 왜 대학원 정치학과에 가냐고 교내 여론이 말이 아니었지만, 교지에서 사실을 해명했다고 한다.
연세대 재학 중이었던 그는 가수가 되기 위해 이 소속사 저 소속사 다니며 자신이 작곡한 노래를 들려줬지만 번번히 독특한 체형과 마스크 때문에 거절을 당했다. 당시엔 김원준 같은 귀공자 마스크가 아니면 연예계 데뷔가 쉽지 않았다. 오디션을 보러다니던 회사 중 한 곳이 다름아닌 SM엔터테인먼트였다. 계속 오디션에서 떨어지는 걸 보다못한 클론의 구준엽이 박진영을 직접 이수만과 만나서 오디션을 보게 해줬지만 결국 떨어졌다고 한다. 이 때의 일화가 유명한데 이수만이 퇴짜를 놓으면서도 박진영의 실력 자체는 인정했는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곡만 팔지 않을래?"라고 요구했다. 물론 박진영은 싫다며 단칼에 거절. 그 곡이 바로 날 떠나지마 였다.
그러던 중, 작곡가 김형석이 소속된 기획사의 오디션에 뽑히는데 성공했고 데뷔 준비를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소속사는 원래 피아노-발라드 곡이었던 날 떠나지 마를 댄스곡으로 편곡하자는 제안을 했고 제안을 받아들인 박진영은 데뷔를 위해 철치부심으로 준비한다. 그리고 1994년 9월, 가요계에 혜성같이 데뷔한다. 본격적으로 유명해지기 전에 '날 떠나지마'는 광고음악으로 대중들에게 입소문을 탔는데, 이 노래가 삽입된 광고가 오리온 센스민트 광고였고, 이 CF로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또 다른 슈퍼스타가 바로 정우성이었다. 이 CF를 보고 수 많은 소녀팬들이 잘 생긴 외모에 춤과 노래까지 완벽한 슈퍼스타의 탄생에 가슴 설레였으나 데뷔 무대에 올라온 박진영을 보고 실망했다는 후일담도 있다
어쨌든 흑인 Feel을 강조했던 그의 고릴라 같은 비주얼과 춤과 노래는 가요계에 신선한 충격을 몰고왔으며, 당시 엉덩이 춤은 대중에게 남자의 섹시코드를 거의 한국 대중음악 사상 최초로 강조했던 충격적인 안무로 기억된다. 결국 인기에 힘입어 1995년 3월 1일부터 8일까지 음악프로에서 4번의 1위를 수상했으며 후속곡으로 활동한 너의 뒤에서도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그의 1집은 1995년까지 47만장의 음반판매량을 달성했다. 한편, ‘라디오스타’는 4MC들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촌철살인의 입담으로 게스트들을 무장해제 시켜 진짜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독보적 토크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1995년 2집에서는 청혼가를 타이틀곡으로 해서 활동했으며 그 당시 R.ef, 서태지와 아이들 등 초대형 가수가 많았음에도 가요톱텐에서는 1위를 차지했고 다른 가요프로그램에서도 1위 후보까지 오르면서 계속된 인기를 구가했다. 특히 후속곡인 '엘리베이터'는 묘한 분위기의 가사나 이소라와 함께 찍은 뮤직비디오의 성적인 분위기가 파문을 불러왔지만 당시 경향신문이 '한국의 타이슨'이라는 별칭을 붙였을 정도로 잘 나가는 그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이것이 진짜 대단한 것이 그때는 지금보다 더욱 연예인 외모의 잣대가 심한 시기였는데도 불구하고 박진영은 섹시스타의 이미지, 그리고 그의 학벌과 조리있는 말투 덕분에 뇌섹남의 이미지 거기다 자신의 외모로 맘껏 농담하고 즐길 줄 아는 여유까지 겸비해 정말 외모 빼고 잠깐 눈물 좀 닦고 모든 걸 다 가진 남자였다. 게다가 그룹도 아닌 솔로다. 그리고 특유의 긴 팔 덕분에 흐느적 거리는 춤선과 잘 어우러졌다. 1996년과 1998년에 각각 3, 4집을 발표해서 '그녀는 예뻤다', '썸머 징글벨', '난', '허니' 등의 히트곡을 계속 내면서 가수로써 성공했고 싱어송라이터로서도 성공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이후 승승장구하면서 2001년에 발매한 6집도 'swing baby', '난 여자가 있는데' 등의 히트곡을 배출하며 흥행에 성공했으나 이후 6년여 간 음반 발매는 멈추었다.
이상 박진영 나이 근황 프로필에 대해서 알아봤는데요. 공감과 댓글, 공유까지도 큰 힘이 됩니다 한번씩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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