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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진 55주년 나이 프로필

굼뱅 2020. 7. 23.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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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 가수 남진의 모습이 담긴 이미지

남진

예명 : 남진(南珍)

본명 : 김남진(金南鎭)

출생 : 1945 9 27 (74), 미군정 전라남도 목포부

학력 : 목포유달중학교, 목포고등학교,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학사

데뷔 : 1965년 서울 플레이보이

가족 : 부친 김문옥, 슬하 1 3

장르 : 트로트


가수 남진이 팬들의 사랑과 후배들의 존경 속에 데뷔 55주년이라는 감격적인 순간을 맞았다. 7월 23일 오후 3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63시티 컨벤션 그랜드볼룸에서는 가수 남진 데뷔 55주년 기념 헌정식 기자간담회가 진행됐다. 현장에는 남진, 김광진, 이자연, 조항조, 진성, 알리, 육중완 밴드가 참석했다. 1965년 ‘서울 플레이보이’로 데뷔한 남진은 준수한 외모와 감미로운 목소리, 유쾌한 동작으로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라 불리며 대한민국 가요계에서 최초의 오빠부대를 만들어 냈다. 남진은 ‘님과 함께’, ‘그대여 변치 마오’, ‘빈잔’, ‘둥지’ 등 다수의 히트곡을 발표해 왔으며, 후배 및 동료가수들의 권익보호에도 관심이 많아 대한가수협회 1대 회장, 한국연예협회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55주년

앞서 후배들은 가수 남진의 데뷔 55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헌정앨범에 뜻을 모았다. 지난 5월 발매된 헌정 앨범에는 이자연, 설운도, 진성, 조항조, 박상민, 알리, 서문탁, 박미경, 육중완밴드, 김종서 등이 참여해 남진의 히트곡을 새롭게 해석했다. 1년 전부터 추진해 온 남진 데뷔 55주년 헌정 음반 제작은 완성도와 코로나19 여파로 당초 계획보다 늦어졌다. 이날 가수 남진 55주년 헌정 앨범 추진위원장 김광진 회장은 “남진이라는 가수에게 대한민국 국민이 55년 동안 신세를 많이 졌다”고 말했다.


이어 “후배 가수들도 남진 선배처럼 이 나이까지 왕성하게 가수 활동을 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후배들이 노래를 불러 존경하는 선배님에게 헌정하는 앨범을 만드는 전통이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 가수 남진의 오랜 친구로서 이런 행사를 추진할 수 있다는 데에 대해 보람있고 기쁘게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현장에 참석한 대한가수협회장 이자연, 조항조, 설운도, 진성 등은 어릴 때부터 선배 남진을 보고 자랐다고 밝히며 그를 향한 존경심을 드러냈다. 이자연은 “남진 선배님은 농업 시대부터 데뷔해서 산업화 시대에는 가난한 국민들을 위로하고 희망과 꿈을 주는 노래를 했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상상할 수 있게 했다”며 “멋지고 알찬 씨앗을 뿌리면서 55주년이라는 시간을 꾸준히 사랑 받았고 그 결실이 오늘이 아닌가 싶다.

 


트로트

선배님은 후배들의 귀감이 되면서 꾸준히 건강하게 활동하실 거다. 남진 선배님의 뒤를 이어 멋진 모습을 본 받으며 활동할 예정이다”고 전했다. 조항조는 “55년 동안 국민들에게 희로애락을 주시느라 고생 많으셨다. 남진 선배님은 대중가수는 대중들에게 군림하는게 아니라 존재의 가치를 느끼게 해주는 사람이라는 걸 느끼게 해주셨다”고 설명했다. 설운도도 무명시절 남진의 조언이 활동의 큰 힘이 됐다고 밝히며 “한 곡 한 곡에 삶의 철학이 있고 애환이 있고, 깊은 감동이 있는 곡이라는 것을 이번에 선배님 노래를 하면서 절실히 느꼈다. 가왕이라는 것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데뷔 55주년을 맞은 남진의 소회도 남달랐다.


데뷔 55주년을 가능케 한 원동력으로 팬들의 뜨거운 사랑과 응원을 꼽은 남진은 체력 관리 비법을 노래라고 밝히며, 노래를 향한 큰 애정을 드러냈다. 남진은 55년 동안 세 번의 슬럼프를 겪었다고 고백하며 이 때마다 잊지 않고 뜨거운 응원을 보내준 팬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그러면서 남진은 많은 히트곡 중 ‘가슴 아프게’, ‘미워도 다시 한 번’, ‘빈 잔’, ‘님과 함께’, ‘둥지’ 등을 기억에 남는 곡으로 꼽았다. 남진은 TV조선 ‘미스트롯’, ‘미스터트롯’ 등 트로트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트로트 붐이 일어난 것에 기뻐했다. 그는 “그동안 약간 침체기였던 것은 사실이다.


트로트 붐

새로 데뷔하는 후배들 통해서 트로트 붐이 일어나서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동안 여러 가지 아쉬움이 컸지만 이번에 다행히도 다시 사랑을 받게 돼서 감사하다. 이 자리에 계신 후배님들의 감춰져 있던 새로운 모습도 기대하고 있다. 우리 가요 많이 사랑해 달라”고 당부했다. 끝으로 남진은 “후배님들이 정말 귀한 시간을 내서 멋진 목소리로 행사에 참여해줘서 무한한 감사와 기쁨, 보람을 느낀다”며 “반세기 동안 사랑을 받은 것은 팬들의 사랑이었고 그러면서 세월이 흘렀다.


노래가 없는 내 인생은 과연 내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금 노래라는게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남진 측은 대한민국 대중가요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남진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기념 메달을 발행한다. 사전 예약을 통해 판매되는 기념 메달의 모든 수익금은 남진 기념관 건립을 위해 기부 될 예정이다. 한편 남진은 현재 SBS ‘트롯신이 떴다’, MBN ‘보이스트롯’ 등 프로그램에서 활약하고 있다.

 


음반활동

원래 스탠다드 팝과 엘비스 프레슬리의 록큰롤 창법을 선호했고, 선이 굵은 저음의 남자다운 보이스를 가지고 있다. 대한민국의 원로가수로 오빠부대의 원조격이라 불릴 정도로 높은 인기를 얻었다. 자타공인 1970년대 한국 가요계의 아이콘으로서 라이벌인 나훈아와 함께 한 시대를 양분했던 슈퍼스타이다. 데뷔 50주년을 넘긴, 70대인 현재도 현역으로 꾸준히 활동하고 있으며, 대한민국 가요계 역사의 산증인이라고 할 수 있다.


90년대 두번째 컴백 이후로는 나이도 있고 해서 트로트 곡 위주로만 발표했지만, 60년대 중반부터 70년대 중반까지 최전성기에 트로트와 로커빌리 로큰롤을 오고 가면서 다양한 장르를 소화했다. 또한, 엘비스 프레슬리를 깊게 의식하여 엘비스를 벤치마킹 한 것도 유명하다. 그래서 그가 부르는 트로트는 다른 트로트 가수들에게서 나오는 뽕끼가 없어서 지금 들어도 중후하고 세련된 느낌이 든다. 현재는 가수로서만 기억되지만, 원래 영화배우를 지망한 연극영화과 출신이었고, 전성기에는 수십편의 영화에 출연한 영화배우다. 출연작을 보면 외모로 여느 남자배우과 비교해도 빠지지 않는다.


라이벌

비슷한 시기의 인기가수 나훈아와 여러면에서 상반된 이미지로 활동했는데, 나훈아가 시골의 정서나 고향의 향수를 노래했다면, 남진은 철저히 도시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나 도시의 느낌을 다룬 노래로 유명했다. 또 나훈아는 선원인 아버지를 둔 부산의 평범한 집안이었고, 남진은 목포의 부유한 집안이라는 출신의 차이도 있다. 나훈아가 프로필에 자신의 생년월일을 1947년 2월 11일이라고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1950년생이라고 주장하는 등 아직도 애증이 남아있다. 덤으로 지역드립도... 오죽하면 신문에서도 두 사람을 대놓고 비교하는 칼럼을 시리즈로 실으면서 두 가수 팬덤 간의 견제와 싸움을 부추겼다. 전체적으로 남진은 저음의 목소리에 수려한 외모를 가진 타고난 슈퍼스타로서 높은 대중성으로 가요대상을 매년 수상했고, 나훈아는 투박한 외모에 간드러지는 목소리를 가졌다.


지금은 라이벌로 비교되는 2명이지만, 남진이 인지도를 얻게 된 것은 나훈아보다는 한참 앞서고, 라이벌이라고 불리게 된 건 1970년대에 들어서이다. 이후의 방송 활동도 방향이 차이가 많이 났다. 나훈아는 콘서트 방송을 제외하면 방송 프로그램에 거의 출연하지 않는다. 평소 행적도 신비주의 컨셉을 강하게 유지한다. 반면 남진은 예능 프로그램 등 각종 방송에 적극적으로 출연했고, 신비주의보다는 익숙하고 편안한 이미지를 구축하려 했다. 한국어 위키백과엔 중국사의 남진, 진(육조) 문서에 별도 리다이렉트가 되어 있다. 베트남 파병 당시, 어머니가 보내주신 파김치(담그자마자 부쳤는데도 오는 도중에 다 쉬어버린...)를 동료들과 싸워가며 잘때도 끌어안고 아껴 먹었다고 한다. 평생 그렇게 맛있는 음식은 다시 먹어본 일이 없었다고.

 


이상 남진 55주년 나이 프로필 에 대해서 알아봤는데요. 공감과 댓글, 공유까지도 큰 힘이 됩니다 한번씩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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